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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병 치료, 그분이 나에게는 하느님이다.

by 대한민국 50대 남자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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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피부병으로 엄청 고생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피부병 발병시점은 약 4년 전 봄 아버님 80세 생신도 다가오고 해서 머리를 깎으려 미용실에 들렀을 때가 아닌가 의심된다. 머리를 자르기 전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니 흰머리가 꽤나 많이 늘어 있었다.

 

전농동 피부과 입구이다. 이곳에 예약 대기번호를 적을 수 있다.
조광의원 출입구

 

문득 팔순을 넘기시는 아버님이 당신만큼 머리 허연 아들을 보시면 마음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 처음으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용사 선생님에게 머리 다듬고 나서 염색을 부탁했다. 염색을 다하고 나니 흰머리가 새까매져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여 내심 어색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10년은 젊어 보인다고 하니 그런대로 만족했다.

 

손등에 오돌도돌한 피부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손등 피부병

 

그런데 이때부터 며칠 지나자 머리에 간지럽고 조그만 피부 트러블이 생기더니 급기야 가려움증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양 눈썹 부분이 도드라지게 빨개지고 얼굴의 중심인 코는 딸기코가 되어갔다. 더구나 술 한잔 한 날이면 그날 밤은 술에 취해 가려움을 이기기 못해 잠결에 온몸의 여기저기 긁어대서,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의 피부 상태는 장난이 아니었으며, 이 상처를 가라 앉히는데 적어도 삼사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햇빛 알레르기라는 것도 생겨서 낮에 산책이나 조깅을 할라치면 팔과 다리를 중심으로 붉은 반점이 넓게 생기면서 가려워져 그야말로 활동량동 많이 줄어 살도 퉁퉁하게 쪄갔다. 그래서 서울시내 용하다는 피부과 원정기에 나서, 여러 병원의 온갖 치료와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딱히 피부병이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피부병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동거를 하는 미봉책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용하다는 동대문구 전농동 로터리, '조광 의원'에 가다

그러다 회사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고질적인 무좀으로 고생하던 한 선배가 자신도 무좀 치료를 위해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을 다 누비다 결국 자기가 사는 동네 한 의원에서 고친 사연을 얘기하며 그곳에 한번 가보라고 추천을 했다.

 

 

그분의 말을 빌자면 무좀으로 인한 가려움이 너무 괴로워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괴로웠는데 그 병원에서 치료받고 처방약 며칠 먹고 바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피부과 원정기에 한 군데 더한다고 큰 흠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하며, 반신반의하며 바로 다음날 그 병원에 갔다.

 

 

독특한, 너무도 독특한 병원

그런데 이병원이 조금 특이하다. 그래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해 있으니, 시골도 아닌데 그곳에 처음 갔을 때의 병원 모습을 본 나의 인상으로는 이 병원은 군소재지, 아니 읍소재지 정도에 있을 법한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전화 예약은 안되고 본인이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기다리다가 진료를 받는 시스템인데, 대기자가 너무 많다 보니 새벽부터 그 병원에 가원 문 앞 벽에 흰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다.

 

 

여기에 선착순으로 위에서 아래로 간단한 환자의 신원사항과 연락처를 적고 돌아갔다가 오전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하니 그때부터 병원에 가면 흰 종이에 적힌 순서대로 진료를 받으면 된다. 나는 이런 사정을 미리 알고, 아침 7시 30분쯤 그 병원에 도착해서 순서 적는 흰 종이를 보니 벌써 27번째였다.

 

 

이 정도면 오전 10시 반에서 11시 반 사이 정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되어 주변에서 아침도 먹고, 적당히 그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다 11시에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에 들어서니 첫인상은 "야 이거 뭐 잘못 온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내부는 정말로 80년대 시외버스 대합실처럼 의자들이 쭉 배열돼 있고, 텔레비전 한대는 역시 kbs1이 무심히 떠들고 있었으며, 과월호 위주로 여러 여성잡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쨌든 그곳에 빈 의자를 찾아 한 20분 정도 기다리는, 내 이름을 호명하여 의사 선생님 앞에 서니 의사 선생님은 연세가 70은 넘으신 것 같아 보였고, 뭐 첨단 비슷한 의료기구는 하나도 없이 청진기, 그리고 피부병 부위를 잘 볼 수 있는 돋보기 기능을 하는 장비 하나가 진료장비의 전부였으며, 그 많은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오래돼 보이는 구형 컴퓨터 한대와 수기로 작성하고 관리하고 계셨다. 우여곡절 끝에 아픈 곳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흔쾌하게 "한 일주일면 나을 게야"라고 말씀하시며 주사 맞고 약 처방해줄 테니 잘 챙겨 먹으라고 하시네.

 

 

그래서 진료실 옆 주사실로 들어가니 또 한 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내 어렸을 적 아버지 따라 이발소에 가면 이발소 한 귀퉁이에 있을법한 철근을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세숫대야를 올려놓은 세면대와 그에 준하는 실내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마지막으로 민망하게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내리는데 중년의 간호사 선생님이 바지를 무릎까지 다 내리시라고 하셔서 살짝 불안했는데, 역시나 그저 주사 한 대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연이어 오른쪽 엉덩이에 두대, 왼쪽 엉덩이에 한대, 도합 주사 세대를 순식간에 꽂아 넣으니 엉덩이가 얼얼해 "어 세대씩이나 놔주시나요?"라고 묻자, 방음이 잘 안 된 병원이라 옆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시던 의사 선생님이 "세 방은 맞아야 빨리 나아"라고 말씀하시네.

 

 

내 병 낫게 해 주시는 분이 내게는 하느님!

주사를 맞고 바지를 주섬주섬 추켜올리고, 또 20분 정도 기다려 처방을 받는데 약을 한 달 치나 처방해 주셨네. 자주 오기 어려우니 길게 끊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 문을 나와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왔네. 그런데 약을 먹으며 3일 정도 지났는데, 온몸에서 병이 나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가려움증과 피부병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한 일주일 정도 지나니 완치에 가까워져 약도 안 바르고 복용 약도 먹지도 않았네.

 

 

그 이후로 1년 정도 지난 지금까지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네. 그래서 그동안 여기저기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주변분들에게 그 병원 전도사가 되었다네. 나는 피부병을 고친 후 이런 생각을 한다네. 그렇게 고생하던 고질병을 고쳐주신 그분이 내게는 주님이요, 하나님이요, 부처님이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인간사 여러 어려움에 중에 하나라도 누군가 치료해 준다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명의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네. 밥해주는 '마눌님' 하나님, 살갑게 애교 떠는 '딸' 하나님,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하나님, 등. 이런 생각이 특정 종교인에게는 어불성설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니 크게 괘념치 않았으면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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