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나서 아파트 정원을 둘러보니 벌써 부지런한 풀들은 새순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봄 하면 꽃이고, 봄꽃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벚꽃이다. 필자는 업무상 여의도에 자주 가는 편이어서 벌써부터 여의도에 만발할 벚꽃이 기대된다. 여의도 벚꽃은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 초중순이면 그야말로 여의도는 '벚꽃의 왕국'으로 변한다.
여의도에 벚꽃은 몇 그루나 될까?
필자는 여의도에 저 정도로 벚꽃이 만발하려면 과연 벚나무가 몇 그루나 돼야 하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경향신문 2008년 4월에 작성된 '벚꽃 관련 기사'에서 여의도 벚나무가 1,600여 그루라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출처는 불분명하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어 '여의도 벚꽃'으로 찾아보았다.
검색 결과 조선일보 1968년 4월 12일 4면에 관련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사 제목은 '여의도 제방에 버드-벚나무 심기로'라고 되어있으며, 내용은 새로 개발 중인 여의도 제방에 수양버들 나무와 벚나무 1천 그루를 심기로 결정하여 그해 4월 말까지 심는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그때 당시에 원래는 수양버들만 심으려는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국화인 벚나무를 심는다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기사에 근거한다면 처음부터 벚나무 1천 그루 정도로 시작되었으니, 적어도 여의도 벚나무의 숫자는 1천 그루 이상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일부는 창경궁(창경원)에서 옮겨 심어
그렇다면 여의도 벚나무는 묘목으로 심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다 큰 벚나무를 옮겨 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부 자료에는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창경원(현재 창경궁)에 일제가 심어놓은 벚나무를 여의도로 옮겨 심었다는 내용이 있어 이를 일부 인용하면, "1909년 일제강점기 일본은 창경궁의 전각들을 헐고 그 자리에 훗날 창경원으로 불리게 되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열면서 벚나무 1,000여 그루를 들여와 심었다.
이후 1986년 창경원을 헐면서 그곳에 있던 벚나무의 일부는 베어버리고, 일부는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와 심는데, 이것이 오늘날 윤중로 벚나무의 경로 중 하나이다. 다른 경로는 1960년대 영향력 있는 일본인, 일본 기업과 단체가 재일교포와 함께 대거 묘목 기증에 나서면서 조성되었다. "라고 되어있다.
여의도 벚꽃에도 나라 잃었던 슬픔이 배어있어
여의도의 벚나무 유래에 대해 정리해 보면 여의도 벚나무는 1968년도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천여 그루로 여의도 제방에 심는 것을 시작으로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창경궁에 일제가 심어놓았던 벚나무도 일부 옮겨 심어졌고, 추후에 여의도의 도시화 과정에서 가로수나 입주한 각 관공서, 기업 등에서 자발적으로 조경을 위해 심어진 복합적인 유래로 보면 맞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늘 보고 이용하는 많은 것들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일제 36년간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봄에 만발한 벚꽃을 보면서도 마냥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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