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인 대통령 관저의 변경 즉, 대통령 집무실을 현재의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매일 같이 '청와대'라는 단어가 뉴스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 '청와대'라고 검색을 해보니, '청와대' 역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의 관저였고, 일제가 만든 총독관저 건물을 광복 이후에도 약 50년이나 대한민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이용하다가 겨우 30년 전에 일제가 지은 건물들을 헐고 새로 지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처음 알게 됐다.
이런 사실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알게 되는 사실인데, 왜 우리는 이런 사실을 공공연히 알지 못했을까? 이 또한 민족적 자존심 때문에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방식으로 진실을 적당히 은폐한 것인가?
고려시대에는 남경 별궁, 조선시대는 경복궁의 후원
검색된 자료들을 보면 조금씩 차이나는 부분은 있지만 청와대의 유래에 대해서 일치하는 대강의 사실들을 적어본다. 첫째, 청와대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남경(南京)으로서의 별궁(別宮)이 있던 터였다는 것이고
둘째,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 경복궁(景福宮)을 창건하면서 궁궐 후원으로 삼아 이곳에 연무장(鍊武場), 융무당(隆武堂), 경농재(慶農齋) 및 과거장(科擧場)이 마련되었으며, 왕의 친경지(親耕地)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복 후 50년 가까이 까지도 일제가 지은 건물이 대한민국 청와대였다니
그 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청사(廳舍)를 신축하면서 1927년 오운각(五雲閣) 외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이곳에 지어 사용했다고 한다. 청와대 본관은 바로 이때 일제가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1945년 8·15 광복과 더불어 미군정이 시작되자 이곳은 그대로 군정(軍政) 장관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그 후 1960년 4월 4·19 혁명 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이 경무대의 주인이 되자 독재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경무대'라는 명칭을 버리고 ‘청와대’로 개칭하였고, 1990년 프레스센터인 춘추관과 대통령 관저가 신축되면서 1993년 8월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의 지시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이 기거하였던 구관은 철거되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역사도 피 토하는 심정으로 알려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조선시대부터만 계산해도 조선왕조에서 일제로,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그리고 미군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로 적어도 세 번의 격변기를 겪었으며, 청와대에서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지운 것은 지금부터 겨우 30년도 못됐다니, 청와대는 안타까운 우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50년 넘게 이 땅에 살면서 받은 정규 교육 과정 중에 청와대의 이런 슬픈 역사가 왜 기술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백번 양보해서 적어도 수학여행 갔을 때 이런 내용을 왜 알려주지 않았는지 정말 아쉽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떠나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이를 악물고 발전할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는 과거 일제의 만행에 대한 규탄에만 열을 올리고, 정작 극일을 위한 피 토하는 자존심 상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는 너무 등한시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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