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대문 근처 음식점에서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갔었다.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남대문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동안 지나다니면서 먼발치로 보기만 했었는데, 이날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모임 장소에 도착한 덕에 여유 있게 남대문을 둘러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어제 보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남대문(숭례문)이 개방되어 있어서 남대문 안으로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았다. 몇 년 전 불이 나서 꽤나 안타까워했었는데, 지금은 제 모습을 찾은 남대문이 기특해서 요놈을 떠받치고 있는 석축을 쓰다듬어 주었다. 문루는 새로 지어 깨끗하지만 석축들은 각기 세월의 무게를 달리해서 색깔이 다양하다. 이런 모습이 오히려 우리네 인생을 닮은 것 같아 더 정감이 간다.
사진 서너 장 찍고 세로로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쓰인 현판을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본다. 다행히도 어려운 한자는 아니다. 숭례문을 통과하면서 문지방이 있는지 재미 삼아 살펴보니, 역시나 문지방은 없다. 필자가 어려서 살던 시골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서울 안 가본 놈이 서울 가본 사람에게 남대문 문지방 있다고 우긴다."라는 말이 있었다.
어제 필자가 서울살이 10년 만에 직접 확인해 보니 남대문에는 확실히 문지방이 없었다. 남대문 정식 이름이 '숭례문'이라고 즉, 예를 숭상하고 중히 여긴다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오죽 예의 숭상하지 않으면 예의를 중히 여기자고 조선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 저렇게 커다랗게 적어놓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서어서 좋은 세상 되어서 저런 '예의를 숭상하자'라는 구호는 얼른 떼어버릴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표어도 500년 가까이 걸어놓으면 식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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