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을 먹으러 시내의 한 식당에 들렀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옆 계단아래에 짤순이 포장박스가 서있다. 반갑다 추억의 짤순이, 이 기계의 기능을 단박에 설명해 내는 '짤순이'라는 상표는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요즘 이 제품을 출시하면서 '짤순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면, 빨래는 여자가 한다는 조선시대적 고리타분한 남녀차별적 상표라고 여론의 돌팔매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어려서는 어머니들이 빨래거리를 커다란 다라에다 담아 머리에 이고 동네 빨래터에 가서 빠래를 하던 시절이었다. 봄, 여름, 가을은 그나마 빨래하기가 수월하지만 한겨울 개울물은 다 얼어붙어서 멀리 떨어진 샘물이 나오는 빨래터로 온 동네 아낙들이 참으로 힘들게도 오고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시절이 지나 집집마다 상수도가 들어오고 나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지만 빨래를 하는 아낙들의 육체노동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세탁기가 들어서면서 빨래가 참으로 수월해졌는데 손빨래에서 세탁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가교역할을 했던 기계가 바로 짤순이였다.
필자의 집에도 짤순이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빨래를 짤순이에 넣고 스위치를 켜면 팽그르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었다. 팽팽 돌아가던 짤순이가 멈출 때쯤 그새를 못 참고 뚜껑을 열어 손으로 돌아가는 회전판을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던 그 느낌도 아련하다.
그렇게 짤순이는 세탁기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이제는 짤순이 보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짤순이를 보고 나니 반갑고 기특하다. 아마도 저 짤순이는 식당에서 만두소를 만들 때 무채, 배추, 두부 같은 것들의 수분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면서 어떤 제품들은 본래의 기능보다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몇 년 뒤면 필자도 퇴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변함없는 지식이나 자격증도 그 가치가 변하게 될 것이고 무뎌진 손발의 움직임도 가치가 퇴락될 것이다. 그래 가치가 사그라드는 나의 능력들을 새로운 곳에 적용해서 가치하락을 더디게 하거나 오히려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없는지 심도 깊게 고민을 하고 실천해 봐야겠다. 오늘도 계단아래 처박혀있는 짤순이 박스 보면서 앞날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50대 남자의 자세 그런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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