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필자가 식목일쯤 해서 심어놓은 배나무인지 사과나무인지 자두나무인지도 헷갈리는 나무에서 꽃이 피었다. 작년에 심을 당시에는 무슨 나무였는지 알았었지만 한겨울 지나고 나니 당연히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무마다 수종을 표기해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일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흰색 꽃잎이 소담하니 아마도 배꽃이 아닌가 추정해 볼 따름이다. 그래도 한겨울 잘 버티고 꽃을 피웠으니 대견한 일이다. 꽃 몇 송이 피운 나무보고 별 호들갑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상황에 따라 똑같은 일을 겪어도 느끼는 바는 천차만별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지나가다 만나는 꽃들은 그저 봄이 왔구나, 참 곱다. 정도의 느낌이라면 필자가 손수 심은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본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감정을 이끌어낸다. 흡사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이랄까? 남의 집 애들이야 나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집 새끼들은 돌잡이에서 뭘 들었는지, 엄마 아빠를 처음 불렀을 때의 느낌, 아장아장 처음 걷던 날,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 한글 깨칠 때, 태권도 공개 승단시험 등등.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된 일들은 추억이고 애정이다. 그래서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하찮은 것들도 내가 관여했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지랖 넓게 세상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장 가까운 것, 집사람, 내 아이들, 부모형제에만 집중하고 사랑하며 살자.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산다면 문제 될 것이 없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 그것만 해도 괜찮은 인생이다. 이렇게 꽃피는 계절에 스스로 자위하며 오늘도 살아가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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