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파트 뒤켠에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인적이 드문 시간에 이 산책길을 걸으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활기차진다.
오늘 아침도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조금 싸늘한 공기를 이겨내며 아파트 단지 산책길을 걸었다. 어느덧 아파트 뒤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도. 레. 미. 피아노 건반을 뛰어다니듯 징검다리 모양의 산책길을 폴짝폴짝 걷다가 이내 남의 이목이 무서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봄날 새싹들을 틔우는 나무들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필자의 보폭과 산책로 디딤돌의 간격이 맞지 않아 발을 살짝 접질렸다. 이런. 산책을 하면서도 발 디딜 곳을 살펴가며 걸어야 하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산책은 말 그대로 눈가는 곳 따로, 발 가는 곳 따로 해도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데 보기에는 아름답게 만들어놓은 돌로 된 발디딤판이 오히려 산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접질린 다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산책길을 다시 바라보니 역시나 사람들은 현명하다. 산책길을 만든 사람들은 징검다리 형태로 길을 냈는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징검다리 옆으로 걸어 다녀서 또 다른 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놨으니 말이다.
필자는 이 산책길을 바라보며 역시 사람들의 기본적인 행동은 역시 아날로그가 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일정간격을 쪼개서 징검다리 형태로 산책길을 만들어 놓아도 정해진 간격이 모든 사람에게 적당할리는 만무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징검다리 디지털 길을 외면하고 그 옆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아날로그 길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나 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지도 벌써 한 세대가 다되어 가진만 그래도 우리네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들을 편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LP판으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 하나를 보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의 깊이를 더 내려보고 글로 옮겨보는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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