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산책을 하다가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 공터의 울타리에 핀 나팔꽃을 감상하곤 했었다. 그러다 겨울이 오고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한겨울 풍파에 울타리에 말라붙어있는 나팔꽃 넝쿨을 발견했었다.
궁금한 마음에 그 넝쿨을 들여다보다가 까만 나팔꽃씨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가을에 아침저녁으로 피고 지는 보라색 나팔꽃은 많이 봐왔지만 나팔꽃씨앗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신기한 생각에 나팔꽃씨 몇 개 주워와서 싹을 틔워보기로 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조그만 접시 위에 휴지를 깔고 물을 붓고 나팔꽃씨 대여섯 개와 기억은 안 나지만 콩보다 조금 큰 씨앗 서너 개를 올려놓았다. 이렇게 필자의 나팔꽃 싹 틔우는 도전은 시작되었다.
출근하면 사무실 한편에 놓아둔 이 나팔꽃 접시에 커피를 마시는 정수기물을 살짝 따라주었고 가끔씩은 물주는 일을 까먹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출근하면 물기가 바싹 말라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길 반복하며 어느덧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오늘 나팔꽃씨앗 중 한놈이 싹을 틔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에 얼른 종이컵에 흙을 담아 나팔꽃 새싹을 옮겨 심었다.
이제 한놈이 싹을 틔웠으니 나머지 놈들도 곧 싹을 틔우리라. 그리고 콩알만 한 이름도 까먹은 씨앗도 싹을 틔울 것이라는 기대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
아주 정성을 다하지 않았고 대충대충 물만 주길 3개월 정도, 그런데도 새싹을 틔운 나팔꽃 새싹을 보며 세상 아등바등 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은 아니고 많은 일들이 생각하고 의도한 대로 되기보다는 시간이 흘러가서 다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일이 사실은 많다는 것을 이 나팔꽃 새싹을 보며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젊어서는 정말로 노력에 의해 모든 것들이 좌우되는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 자신이 이루고 잃은 것들 중 상당한 부분이 내 노력이나 실수에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나이가 되었다.
운칠기삼(운7기3)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운구기일(운9기1) 정도도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노력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좋은 기운에 닿는 접점을 늘려가는 효과적인 노력이 좀 더 좋은 노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 가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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