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취미를 같이하며 2년간 공부를 같이했던 형님들을 만나서 소주 한잔을 했다. 만나는 분들이 사는 동네가 각각 다른지라 네 명이 거리상으로 가장 쉽게 모일 수 있는 장소인 건대입구역 근처의 곱창집으로 약속 장소가 정해졌다. 필자는 약속이 정해지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0분 정도 미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동네를 둘러보는 일을 재미로 삼고 산다.
건대입구역, 숯불 부자 곱창
어제는 건대입구 6번 출구로 나와서 건대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거리에는 오랜만에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거리를 거닐며 살짝 들뜬 기분마저 느껴졌다. 한 10분을 걸어 약속 장소인 '숯불 부자 곱창'에 이르러 약속 장소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해 놓고, 약속시간 전까지 남은 20여분의 동네 구경을 이어갔다. 예쁘게 단장한 각양각색의 카페들과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난 양꼬치집, 간이 일식집 등의 간판과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사진도 몇 장 찍어본다.
작아진 초등학교 운동장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반환점을 정해 돌아서 오는 길에 서울화양초등학교가 보여 안을 들여다보니 필자가 어린 시절에 그리 커 보이던 운동장이 아주 아담한 모습으로 변해있었지만, 여러 가지 시설들을 정말 보기 좋게 꾸며놓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요즘 초등학교에 외부인이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학교 보안관 아저씨의 제지와 신원확인이 필요하니, 아무 때나 들어가 그네에 앉아 동심을 되돌아기가 번거로워졌다는 점이다.
곱창집 지켜내려 아파트 처분하신 사장님 힘내세요
약속시간에 도착하여 식당 입구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는데 곱창집 사장님 본격적인 영업시간 전이라 음식 준비에 짬을 내어 필자와 담배 친구가 된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은 낯선 사람들과의 빠른 낯 트임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축적되어 간다는 것이다. 같이 담배 피우며 몇 마디 끝에 곱창집 사장님의 자영업자로서의 코로나19 극복기의 힘겨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가게를 지켜내기 위해 지난 2년간 아파트도 처분하고, 차도 팔면서 버텨왔으니 이제는 장사가 잘됐으면 한다는 말씀에 부디 그렇게 되기를 응원한다. 이렇게 곱창집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사장님 가게 지켜내려고 아파트 처분해서 버텼는데 아파트 팔고 나니 아파트 값이 다락같이 뛰어 다시는 아파트를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하소연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곱창집 사장님께 필자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단지 곱창을 맛있게 많이 먹는 일이라 생각해서 오늘은 과식을 하더라도 평소보다 두배 이상은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쏘맥보단 내리 소주로 마시는 경향
드디어 기다리던 형님들 세분이 전철역에서 서로 만나 같이 오신다. 반가움에 악수를 나누고 서둘러 자리를 잡고 시원하게 카스 맥주 한잔씩 목을 축이고 나서 주문을 한다. 이 집의 메뉴판 중에 가장 위에 올려있는 소곱창을 2인분 시키고 소주 '처음처럼'을 2병 시켜 본격적인 술자리를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술자리는 소맥으로 시작하다가 소주로 이어지는 패턴이었는데, 요즘을 다시 처음부터 소주로 시작해서 소주로 마무리하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쏘맥을 먹으면 화장실에 조금 자주 가는 생리현상이 발생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조금은 깨뜨릴 소지가 있어서 나이가 조금 드신 분들은 소주로 쭉 드시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형님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술과 곱창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한 형님은 아들놈이 손주 놈 하나 더 있어야 좋겠다는 바람도 말씀하시고, 한 형님 관세업무를 하시다 퇴직하셨는데, 만약 통일만 됐다면 북한 한중 국경지역의 세관 소장을 하셨을 수도 있어다는 아쉬움도 이야기하시고, 또 한 분은 대기업 CEO로 일하시던 무용담도 몇 대목 풀어내신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오가는 술잔 속에 삶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 흘러간다.
2차는 춘천 닭갈비
1차 곱창 후 2차로 생맥주 한잔 하려는데, 근처의 맥주집들은 젊은이들로 점령되어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손님이 많지 않은 춘천 닭갈비 집에 들어가 닭갈비 2인분 시켜서 소주로 또 2차를 이어간다. 닭갈비 하면 춘천이니 너도 나도 춘천에 대한 추억거리로 이야기를 엮어가며 술을 마시다 사리 추가로 닭갈비 불판을 발우공양하고 일어선다.
다음 만남의 기약과 숯불 부자 곱창의 대박 기원
이제 각자가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 두 달 뒤에 날짜를 정해서 다음에는 또 다른 선배가 술값을 내신다고 미리 순번과 대충 어느 동네서 만나기로 정하고, 만날 때와는 술기운으로 품위가 달라진 격한 포옹 인사로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이렇게 오늘도 재밌는 날이 지나간다. 이 형님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두 달 보내시다가, 막내인 필자에게 그 행복 건강 남은 것들 조금 나눠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분 좋다. 곱창집 사장님 힘내세요. 저는 앞으로 건대입구 오면 무조건 '숯불 부자 곱창'으로 오겠습니다. '숯불 부자 곱창' 맛 좋습니다. 사장님도 좋으시고요. 이글 읽으신 분들 곱창 한번 드시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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