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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숭례문_崇禮門) 현판은 누가 썼을까? 왜 세로로 써있지?

by 대한민국 50대 남자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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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현판은 서울역 남대문 쪽으로 올라오면서 봐야 볼 수 있어

얼마 전 필자는 광화문을 지나다 광화문 현판이 궁금해서 알아보았었다.

광화문의 역사와 광화문 현판의 변천사 그래서 그런지 현판을 보면 또 궁금증이 도졌다. 세종로를 타고 운전해서 남대문 쪽으로 가는데 남대문에 현판이 없었다.

 

맑은 봄날 남대문을 서울역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Pixabay 콘텐츠 라이선스에 따른 무료 사용 / 숭례문(남대문)

 

그래서 잠깐 생각해보니 세종로 쪽에서 남대문을 바라보는 방향은 한양도성에서 밖으로 보는 것이니 당연히 현판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현판을 보려면 서울역에서 남대문 쪽으로 올라오면서 봐야 남대문 현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대문 현판은 가로가 아닌 세로로 쓰여 있었다.

 

 

남대문(숭례문_崇禮門)의 역사

한양도성의 남쪽 출입문으로 원래 명칭은 숭례문(崇禮門)이다. 그러나 도성의 남쪽 출입문이기 때문에 통상 별명(별칭)으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남대문으로 부른 것이다.

 

 

한양 도성의 남쪽 문이니 당연히 남대문이 건립된 시기는 조선이 건국되어 수도를 개성(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긴 후인 조선 태조 7년(1398년)이다. 1398년에 창건한 이후 세종 때인 1448년, 성종 때인 1479년에 증개축을 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도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고, 2008년에 방화 사건으로 건물의 대부분이 불타다가 2013년 5월 4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남대문(숭례문_崇禮門) 현판 누가 썼나?

숭례문의 현판은 1398년 건축 당시 누가 썼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세종 때 숭례문을 중건하면서 그때 당시 세자로 있던 양녕대군이 썼다고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년)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다양한 설들이 있어 아직까지는 누가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남대문에 걸려있는 현판은 그래도 2008년 방화로 남대문이 불탈 때도 소방관들이 미리 떼어내어 그 원형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 궁금하시면 링크 클릭하세요.

 

 

남대문(숭례문_崇禮門) 현판만 세로인가?

한양도성의 4대 문중 현재는 서대문이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어 없어지고, 동대문, 남대문, 북대문 3개만 현존하고 있다. 4대 문중에 동대문, 서대문, 북대문 3개의 현판 글씨는 가로로 쓰여있고(동대문_흥인지문 현판만 두자 씨 두줄로 되어있다) 남대문만 유일하게 현판 글씨가 세로로 쓰여 있다.

 

 

남대문만 세로로 쓰인 이유는 조선시대에 유행한 풍수적인 개념에 의거 경복궁을 포함한 한양 도성의 화제를 억지하려는 의도로 남대문의 현판 글씨를 세로로 썼다고 한다. 그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로 적어놓는다.
남대문 현판 숭례문과 광화문 앞 해태상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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