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둘째 아이 학원 상담이 있어서 약속시간에 맞춰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는 몰랐는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 우산을 챙기는 번거로움은 피하고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아파트 단지 인도에 노인 한 분이 쓰러져 계셨다. 우산은 내동댕이 쳐져있고 위급한 상황임을 감지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몸이 먼저 움직인다. 달려가 쓰러져있는 어르신을 살펴보니 넘어지시면서 생긴 상처로 얼굴과 오른손이 피 투성이다. 얼굴을 들여다보며 몇 마디 물어보니 다행히 의식은 있으셨다. 그러나 다리에 마비가 오고 허리에 통증이 있으셔서 일어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급하게 119로 응급구호 전화를 하고 나뒹굴고 있던 우산으로 어르신을 씌워드리며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붙였다.
집은 어디이신지. 집에는 누가 있는지.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는지. 다행히 아파트 동, 호수를 말씀하시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119 응급차량이 도착해서 간단한 치료를 하며 응급차량에 옮겨 실었다. 119 구조요원들의 응급처치와 손 빠른 조치는 정말 믿음이 갔다. 이렇게 어르신을 119로 병원으로 모시는 모습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갔다. 물론 학원 약속시간에 30분 정도 늦었지만 늦은 사정을 들은 학원 원장님께서 흔쾌히 이해해주신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쓰러져 계시던 어르신의 얼굴과 간절한 구원의 눈빛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눈빛이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시에 일어나는 응급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큰 자산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세금을 들여서 유지하고 있는 119 응급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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