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드리워져있는 8월의 주말, 산책을 하고 아파트 단지 한 귀퉁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온몸에 땀은 흐르니 가벼운 바람결에도 시원함이 몰려온다.
널따란 벤치에 앉아 잠깐 사색에 잠긴사이, 어디선가 빨간 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벤치 팔걸이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사주경계를 하며 큰 눈을 두리번거리고 네 조각 날개를 순간순간 살짝 내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린 시절 잠자리 잡던 추억이 떠올라 조심조심 잠자리 꼬리 쪽으로 손으로 꼬리를 잡았다. 옛날 잠자리 잡던 실력이 줄지 않았다. 꼬리를 잡힌 잠자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필자의 손가락 쪽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필자의 손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어려서 이렇게 잡은 잠자리 입을, 그 시절 흔했던 피부질환인 사마귀에 대고 잠자리가 뜯어먹게 하면 사마귀가 치료된다는 민간요법이 생각났다.
손에 잡힌 잠자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놓아주니 시원스럽게 날아오른다. 빨간색 고추잠자리. 빨갛게 익은 고추 색깔을 닮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 같다. 입으로 '고추잠자리'라고 되뇌어 보니 참 이쁜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어릴 적 많이 따라 불렀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라는 노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다 문득 저 고추잠자리가 나와는 무슨 인연이 있어 지금 당장의 이 시간에 나와 만나서 잡고 잡히고 놓아주고 해방되는 이벤트를 연출하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잠자리가 점점 더 눈에 많이 띄게 되는 걸 보니 올해도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곧 다가올 조상님들 산초 찾아가 벌초해야 하는 걱정이 먼저 밀려오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고추잠자리 ( 노래 조용필)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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