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겨울로 접어들 때쯤 베란다에 있던 화분들을 거실 햇빛이 잘 드는 자리로 들여놓았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나자 화분 속에 숨어있던 쑥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신기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가끔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주며 컵으로 마시다 남은 물을 이따금씩 뿌려주었다. 그랬더니 정말 쑥이 쑥쑥 자라났다.
쑥이 정말 쑥쑥 자라네
어느 날 쑥이 15cm 정도 자라더니 이제 제키를 못 이기고 옆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그래서 지지대를 하나 구해 받쳐주려 하는데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집안 여기저기 둘러보다,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던져둔 세탁소에서 공짜로 주는 철사로 된 간이 옷걸이가 보였다. 공구함에서 니퍼를 꺼내 적당한 크기로 절단해서 웃자란 쑥 옆에 꽂아 줄기에 묶어주려는데 또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하얀색 반창고가 눈에 띄었다. 궁여지책으로 하얀색 반창고로 쑥 줄기를 지지대에 고정해 주었다.
쑥을 보호하려 지지대를 받쳐 주었는데 얼마 안 가 역효과
언뜻 보면 쑥이 부상당해 치료를 해준 것 같은 모습은 나에게 엉뚱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나자 쑥잎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것 같아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쑥은 빨리 자라는데 반창고로 줄기가 지지대에 꽉 고정이 되어 있으니, 반창고로 고정된 줄기 아래 부분이 뿔룩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쑥에게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른 반창고를 떼어내고, 적당한 실을 찾아 느슨하게 묶어주었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쑥처럼 자라면 그 손을 놓아주어야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띵하고 때렸다. 이제 내 아이들도 모두 사춘기는 지나갔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오늘 이 화분의 쑥이 나에게 늦은 가르침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두 발로 걷고, 말하고,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부모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 이것저것 잘 챙겨주며 손을 꼭 잡아줘야 하지만, 때가 되면 그 손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저 웃자라던 쑥이 지지대에 선의로 붙여놓은 반창고 때문에 삐뚤어질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야 쑥을 보고 지혜를 깨우쳤으니, 앞으로 손주가 생기면, 그때는 초보 엄마 아빠가 돼있을 내 아들 딸들에게 이 글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이렇게 몇 자 적는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이들, 손주 키우시는 분들 있으시면, 제가 쑥에서 얻은 이 지혜를 한 번쯤 같이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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