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근무지에는 작은 공터가 있다. 커다란 열매도 잘 맺지 않는 호두나무아래 서너 평 되는 공간이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곳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공터를 일구고 뭔가 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가 지난주 금요일 점심식사를 하고 소화도 시킬 겸 삽을 들고 밭을 일구고 고랑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주에 시간이 나면 비닐을 사다가 멀칭을 하고 고추, 대파, 들깨, 상추 등등을 심을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었다.
이렇게 영농계획을 세우고 첫 삽을 뜨고 나니, 주말에 베란다에 거의 방치되고 있는 화분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죽어버린 화초들을 뽑아내고 분갈이를 하고 적당한 크기의 화분에는 인근 농협에 들러 고추, 상추, 쪽파를 심었다.
농협에 들른 김에 근무처 텃밭에 심을 야채 모종을 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전문 농사꾼도 아닌데 굳이 비싼 모종을 사는 것보다는 씨앗을 뿌려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상추, 쑥갓 등 씨앗을 대여섯 개 정도 구매했다.
애초에 멀칭 비닐도 사려고 생각했으나 넓지 않은 텃밭에 오버하는 것 같아서 생각을 바꿔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를 반으로 갈라 멀칭 대용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도시농부의 원대한 꿈을 품고 씨앗 봉투만 챙겨 출근을 했다. 지난주 만들어 놓은 텃밭의 상태도 확인해 볼 겸 출근하자마자 텃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누군가 지난 주말 동안 검정 비닐로 멀칭작업을 완성해 놓은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누가 멀칭작업을 했는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한 것일까? 탐문을 해 보니 필자가 근무하는 시설의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주말에 멀칭작업을 해놓으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비슷한 것 같다. 그 아주머니도 필자와 같이 그 공터를 유심히 보고 계시다가 아마도 텃밭작업을 마무리해 놓은 것 같다. 생각지도 않게 도시농부 동업자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면 그 아주머니와 텃밭의 지분을 얼마로 나눠야 할까? 5대 5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협상에 밀려서 6:4에서 필자가 4 정도 돼도 흔쾌히 받아들여도 좋겠다. 어찌 됐든 동업자도 생겼으니 물주는 일은 반으로 줄 것이고, 텃밭에 들이는 관심은 두배로 늘어날 터이니 좋은 일이다. 이렇게 모르는 누군가와 텃밭을 계기로 의기투합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이렇게 2023년의 봄날도 기분 좋게 흘러간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인생일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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