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평일의 이른 출근길, 다행히 만원은 아니지만 일반석은 만석이고 경로석만 텅 비어있다. 30분 이상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기에 텅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았다. 평소에도 필자는 노약자석이 비어있으면 앉았다가 어르신들이 타시면 자리를 양보해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필자의 지하철 매너 결핍이라기보다는 경로석을 무조건 비워두는 것이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지하철에 타시면 그때 자리를 양보해 드리고 어르신들이 없을 때는 일반인들이 그 자리를 이용하는 것이 한정된 지하철 공간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도 텅 비어있는 자연스럽게 노약자석에 앉았다.
그렇게 노약자석에 앉아 졸며 몇 정거장을 흘러갔는데 눈을 떠보니 필자의 앞게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때 바로 일어나서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해 드리면 되는 일인데, 어쩌다 머뭇거리는 사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할 타이밍을 놓쳤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데 상황이 애매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백발의 어르신이 얼른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눈을 뜨고 백발노인을 살펴도 내릴 기색이 없으시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조는 척을 하고 앉아있는데 어느덧 필자가 내여야 하는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아뿔싸 그러데 이 노인분도 필자와 같이 내리신다. 그나마 필자가 마스크를 쓰고 흰머리 성성한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필자가 경로석에 앉을 정도의 나이로 보였을 터인데 이제 일어서면 노인이 아니 것이 들통나게 생겼다.
이때 필자가 한 행동은 일어나면서 아이고 허리야 하는 낮은 추임새를 넣고 허리를 조금 구부리고 노인 인양 행세를 한 것이다. 애고 경로석 한번 앉았다가 오늘은 진짜 노인 행세를 하게 되었으니 참 얄궂은 하루의 시작이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동료에게 정수리 나오도록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해 찍힌 정수리 사진을 살펴보니 이런 젠장 굳이 노인 행세하지 않아도 필자는 누가 보아도 노인의 모습이었다.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경로석에 앉아서 다녀도 되겠다 싶은 수준이다. 나이가 꼭 물리적인 살아온 날의 합이 아니라 각자의 신체적 노화에 맞춰 계량할 수 있는 날이 곧 도래하지는 않을 테니, 스스로 알아서 상황에 따라 노인 행세도하면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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