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파트 단지에는 단지 뒤편으로 입주민들을 위해 작은 산책길을 조성해 놓았다. 봄이 한창이 요즘 반바지 반소매 차림에 슬리퍼를 싣고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둘러보면 참 좋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잘 조성된 정원수들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주기적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예초기로 제초작업을 하는 날이면 아파트가 하루종일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쩌렁쩌렁하다.
그러나 매일 제초작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마도 한 달 정도에 한 번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잡초란 놈들은 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자라서 어느덧 그들의 목표인 꽃을 피우고 홀씨를 나려 버리는 신공을 펼쳐댄다.
어느덧 민들레는 씨앗을 날려버린 준비가 끝났고 그 옆에 무성한 꽃이름은 모르겠지만 역시나 그들의 목표를 이뤄가는 듯하다. 유심히 이 꽃을 들여다보니 자그마한 계란프라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계란프라이의 노른자가 너무 정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딱딱한 느낌도 든다.
필자가 예측하기로 저놈들이 이미 작은 정원수를 넘어서는 키가 되어가니 아마도 며칠 안으로 날카로운 예초기날에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요놈들은 그럴 것이다. "아저씨 수고하십니다. 근데 우리는 이미 꽃 피우고 열매를 다 맺어서 삶의 목표를 다 이뤘걸랑요. 수고하세요."
그렇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자칫 운명론으로 빠져들면 안 되지만 필자 같은 반백을 살아온 사람들은 넌지시 안다. 그래서 약간의 예지력도 생기는 모양이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미각 같은 기능들이 쇠퇴해 가는 어쩔 수 없는 나이에 경험에 의한 작은 예지력정도가 늘어가는 것이 아마도 삶의 절묘한 쌍곡선이리라.
그래. 점점 사그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하지 말고 새로이 늘어가는 것들을 늘려가는 삶을 살아보자. 갑자기 윤상의 '달리기'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걸~~~"
윤상의 달리기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 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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