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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대 남자, 정원에 핀 봉숭아(봉선화)를 바라보다가

by 대한민국 50대 남자 2022. 8. 23.

아파트 정원에 봉숭아 한 그루 심어져 있는데 꽃이 세 송이가 피었다. 예전에 필자의 시골집 화단에는 매년 여름이면 봉숭아 꽃이 만발했었다. 여름철 툇마루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고 나서 할머니나 어머니께서 봉숭아 꽃을 따다가 아이들 손톱에 물들여주시곤 하셨었다.

 

아파트 정원에 봉숭아 한 그루 심어져 있고 세 송이 봉숭아 꽃이 소담하게 피어있다.
봉숭아 꽃

 

봉숭아 vs봉선화, 우리 동네에서는 봉숭아라고 했다.

그 당시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면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봉숭아꽃 물들인 손톱이 새해가 될 때까지 남아있으면 처녀들이 시집을 갈 수 있다고 하셨었다.

 

 

 

재미 삼아 그때는 젊으셨던 아버지 코 골며 주무실 때 몰래 새끼손톱에도 물들여 드리고 온 가족이 깔깔대곤 했었다. 빨간 봉숭아 꽃을 한 움큼 따 곱게 빠아 백반을 적당히 섞어서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로 빡빡하게 밀봉하고 무명실로 칭칭 감아 하룻밤 자고 나서 풀면 손톱에 곱게 봉숭아 꽃이 내려앉았다. 손톱 맞닿은 손가락 끝 살 부분에도 엷게 봉숭아 꽃 색깔이 연하게 묻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톱이 자라며 물든 손톱은 밖으로 밀려나, 어느덧 몇 개월 지나면 반달만큼 남았다가 연말 그믐쯤 되면 얇은 초승달 모양이 되다가 사라져 갔다. 이런 걸로 추론해 본다면 손톱이 온전히 자라는데 6개월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어떤 흔적을 몸에 새겨 반년(6개월) 정도를 지니고 변해가는 것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봉선화 꽃 물들이기. 나이 쉰 넘어 세월이 정말 빨리 달려가는 이때, 올해는 세월의 빠르기를 어렴풋하게 가늠할 수 있는 봉숭아 꽃 물들이기 한번 해봐야겠다.

 

 

 

봉숭아 (정태춘, 박은옥 노래)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지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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