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나서 이래저래 시간을 때우고 10시가 넘으니, 영어학원에 갔던 아들놈이 귀가한다. 학원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며 자전거는 학원에 두고 왔다고 한다. 자전거를 왜 두고 왔냐고 물으니, "두고 올 수도 있지요"라고 퉁명스럽게 답을 한다. 아마도 친구와 같이 걷는 시간을 가졌거니 생각을 했다. 필자도 그 나이 때쯤 맘 맞는 친구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서도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우정을 느끼는 추억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倉庫實則知禮節
텔레비전을 보다가 담배 한 대 필 겸 해서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 김에 산책도 할 겸 해서 아들놈이 두고 온 자전거를 가져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들놈 영어학원은 집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기에 잘됐다 싶었다. 담배 핑계를 대고 자전거를 가지러 간 이유는 자전거를 잃어버릴까 하는 우려에서다. 더구나 아들놈이 끌고 다니는 자전거는 필자가 몇 년 전 자전거로 운동을 하려고 나름 거액을 주고 산 자전거인데 필자가 잘 타지 않게 되니, 아들놈이 자기에게 달라고 졸라대서 넘겨준 것이었다. 요즘은 자전거를 훔쳐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자전거 도둑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못된 선배라는 놈들은 후배들 자전거나 물건을 제 물건 쓰듯이 써대는 반 야만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기에 아직도 자전거를 학원 건물 아래에 세워두고 왔다고 하니 분실을 우려한 것이다.
자전거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에 야간 택배차가 문을 떡하니 열어젖히고 택배 물품들을 길바닥에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택배기사님은 보이지 않는다. 참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저렇게 차문을 열어놓고 다녀도 아무도 택배 물건에 손대는 사람 하나 없으니 말이다. 이것이 맹자가 말씀하셨던 '倉庫實則知禮節(창고실즉지예절)' 즉, "자고로 창고가 찬 후에야 예절을 안다. "의 세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사방에 CCTV나 차량 블랙박스, 스마트폰으로 촘촘하게 감시되는 세상에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쯤은 금세 들켜버리는 초절정 감시의 세상에 사는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먹고살만해진 대한민국이 이런 도둑질 없는 세상에 기여한 바가 훨씬 크리라. 그래 어서어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놓자. 그래야 이런 평안한 세상 더 오래가고 더 좋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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