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간 참으로 분주했다. 먼저 올해 아흔이신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잠시 멍해졌다. 매년 설이나 추석이면 항상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었는데 올해 추석에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코로나가 걸리셔서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는 것은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외삼촌을 마지막으로 찾아뵌 것이 지난 설이었다.
이렇게 또 한 분의 어르신과의 이별을 맞이했다. 필자가 어린 시절 방학 때면 놀러 가서 며칠씩 머물 때면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돈이 귀하던 그 시절에 만원 자리 몇 장씩 용돈으로 주시던 그런 외삼촌이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온화하면서 어색한 표정을 하신 외삼촌 영정사진을 올려다보며 절을 하고 일어나서 상주인 외사촌 형제들과 마주하니 필자보다 손위인 제일 큰 형님이 눈시울을 적시신다.
눈물이 말라버리신 검은 상복을 입고 힘겹게 앉아계신 외숙모를 보고 나서야 울음이 터졌다.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한참을 외숙모를 끌어안고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외숙모 얼굴을 가까이에서 뵈니 이제 연세가 드셔 깃털처럼 주름이 자글자글 한 모습에 또 안타까운 마음의 울림이 또다시 몰려왔다. 이렇게 울음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식당으로 가서 꾸역꾸역 음식을 먹으며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쓴 소주를 들이켰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조문실 위에 걸린 외삼촌 사진이 필자를 다시금 내려다보신다. 그 순간, 그동안 참아내고 있던 울음이 쏟아지는 순간이다.
애고애고 곡소리가 나오고 술기운이 오십 넘은 필자의 울음 참음을 무장해제시킨 것이다. 이런 상태가 자연스러운 애도의 표현이다. 근엄하게 예의 차리며 의례적인 말로 건네는 말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애도의 마음인 것이다.
'애고애고애고애고, 우리 외삼촌 불쌍해서 어찌할꼬, 불쌍해서 어찌할꼬' 90 평생 그런대로 잘 사시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복을 누리신 외삼촌을 졸지에 불쌍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이 조카의 불경 스러 곡소리를 외삼촌께서는 이해해 주실 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외삼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제 편안하게 영면에 드소서.
'LJ'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50대 남자, 초겨울 버스정류장 대기용 의자가 따뜻한다. (0) | 2022.11.23 |
---|---|
대한민국 50대 남자, 컵 반환금 제도 도전해보고. (0) | 2022.11.20 |
대한민국 50대 남자, 초등학교 교차로 앞 교통정리하는 학부모들을 바라보며... (0) | 2022.11.14 |
대한민국 50대 남자, 욕실 '턱걸이 금지' 경고문을 보면서... (0) | 2022.11.13 |
대한민국 50대 남자, 야근, 주말 근무가 오히려 편한 나이가 되었다. (0) | 2022.11.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