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절정을 이루는 주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송추 가마골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를 피하려 느지막이 음식점에 갔지만 여전히 주차장은 만원이다. 주차 도우미 어르신의 안내에 따라 이중 주차를 하고 차키를 꽂아놓고 식당 입구로 향했다. 식당 입구에서는 대기표를 내주는데 대략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된 지 꽤 지나서 사실 '거리두기'라는 단어도 이제는 거의 의미가 없어졌지만, 앞에 20여 명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는 싫었다.
대기실 문은 나와서 주차장 한편에 있는 외부 휴게공간으로 가니, 긴 벤치가 서너 개가 설치돼 있고 화단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화단 가운데에 우뚝 솟은 주인공은 해바라기였다. 그러나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잎은 시들고 그동안 빳빳하게 태양을 응시하던 해바라기 꽃은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다.
주변의 나무들은 단풍이 들기 시작하며 올해의 막바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해바라기는 왜 저리도 풀이 죽어 있을까? 생각해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주인공이 변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겉모습으로 보면 한여름을 지나 초가을의 기간이 해바라기의 리즈시절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해바라기 씨앗을 튼실하게 꽉 채운 검은 얼굴로 시들시들해진 잎이 힘겨워 보이는 지금쯤이 해바라기의 가장 빛나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리는 조금 굽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머리는 하얗게 변해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사실은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절의 시작인 것이다. 이렇게 가을 하늘 아래 고개 팍 숙인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도 억지로 힘을 내보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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