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정의를 찾아보니,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 상원."이라고 되어있다. 먹는 음식을 살펴보면 '귀밝이술' '약밥' '오곡밥' '생떡국' '섬만두'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관련 풍속은 '줄다리기' 놋다리밟기, 차전놀이(車戰-), 쥐불놀이, 석전(石戰), 부럼 깨기, 달맞이, 달집 태우기, 지신밟기(地神-), 기세배(旗歲拜) 등이 있다고 나와 있다
우리 동네, 정월대보름은요.
위의 자료는 네이버에서 알려주는 '지식백과사전'과 '한국 세시풍속 사전'을 참고했다. 그런데 아마도 전국단위의 풍속을 모두 모아놓았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우리 동네서 즐겼던 정월대보름에 관한 놀이와 음식을 로컬 기준으로 나열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우리 동네, 정월대보름 음식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오곡밥은 꼭 해주셨고, 부스럼을 깨물어야 1년 동안 피부병이 안 생긴다고 호두, 잣, 강정 같은 것을 한번 깨물어 마당에 뱉어버리고 남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저녁 잡수실 때 '귀밝이술'을 드시면서 기분이 좋아지시면 자식들에게도 한 모금 먹어 보라고 장난 삼아 권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설에 만들어 놓은 음식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때쯤이어서 막바지에 남은 가래떡과 취떡을 화로에 구워 먹었었고, 남은 만두와 가래떡을 함께 넣어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만두나 가래떡 같은 설음식도 더 이상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동네, 정월대보름 놀이
겨울방학 내내 들판에 나가서 쥐불놀이하고, 강가에 가서 얼음을 널따랗다 깨서 얼음 배를 만들어 타고, 장대로 삿대 삼아 얼음 배를 타고 다니며, 한겨울 차가운 물속에서 움직임이 둔해진 고기를 장대로 찍어 잡아서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날에 한다는 '다리밟기' '차전놀이'같은 놀이는 우리 마을이 작은 동네여서 그런지 직접 경험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달맞이'는 정월대보름 전후해서 한 일주일 가량 매일 밤 했었던 것 같다. 달맞이를 하려면 우선 달맞이 불통을 만들어야 했는데, 주로 깡통을 못과 망치로 사방으로 촘촘히 바람구멍을 뚫고 깡통 입구에 깡통을 돌리기 위한 줄을 연결했다.
줄은 그때 당시 군용 통신선 일명 '삐삐선'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삐삐선 안에 가느다란 와이어가 여러 가닥 있어서 불에 붙어도 줄이 끊어지지 않고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용했던 깡통은 다른 깡통보다 사이즈가 두 배 정도 되는 분유 깡통을 애용했다. 그리고 깡통에 넣고 태우는 재료로는 불도 잘 붙고 오래도록 화력을 유지할 수 있는 소나무 옹심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날은 특별한 의식이 있었는데 겨울 내내 날리던 연들을 모두 모아서 달맞이할 때 커다랗게 장작불을 지펴놓는데, 거기에다가 모두 태우고 대보름 이후로는 연을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른들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그 이유를 딱히 묻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치열했던 석전(돌싸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이웃동네 아이들과 '석전' 즉 돌싸움 치열하게 했다. 정월대보름날 이웃 마을과 돌싸움이 정해지면, 그날 낮에 동네 형들과 우리 또래 아이들은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돌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나무를 적당히 잘라 몽둥이를 만들고 형들은 죽창을 뾰족하게 깎아서 그날 밤의 결전을 준비했다.
보름날 밤이 되면 이웃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의 주로 논밭으로 이루어진 널따란 개활지에서 전선이 형성됐다. 먼저 그때까지 논에 남아있는 볏짚 가리에서 볏단을 가지고 와서 일렬로 쭉 서서 대오를 맞추고 볏단에 불을 붙여 서로의 기세를 드높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와~ 하는 소리와 함께 투석전이 벌어지고 얼마 안 가서 양 진영이 접근하면서 그야말로 백병전에 가까운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위험한 일을 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런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난 후에 누가 크게 다쳤다거나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모든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이런저런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겨 보지만 모든 추억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겨울철 꽁꽁 언 얼음을 깨서 얼음 배를 만들고 꽤나 깊은 강을 떠다니며 고기를 잡아 구워 먹던 일이라든지, 치열했던 옆 동네와의 돌싸움 등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런 격한 어린 시절을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고 잘 지나왔으니, 나는 아마도 100살을 거뜬히 살 것 같다. 그래도 올 한 해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해달라고 정월대보름 달님 보고 기도나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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