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울타리 안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시골 마당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울타리 주변에는 나무도 몇 그루 심어져 있던 그냥 흙마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자그마한 마당이 보리밭으로 바뀌었다. 작은 마당이 보리밭으로 변장을 하고 보리는 누렇게 익어가는 6월이다.
마당을 보리밭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바로 팔순 넘으신 내 엄마다. 누런 보리가 신기해 여쭤보니 마당에 나는 잡초 뽑기도 귀찮아서 심었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땅 한 뙈기 놀리는 게 아까워 그렇게 하신 거라고 짐작이 된다.
이렇게 익어가는 보리가 맛있는 것을 금세 알아버리는 새들이 날아들어 싱그러운 낱알을 쪼아 먹어대니 머리 좋으신 내 엄마 고놈들을 그냥 둘리는 없으시다.
천재 내 어머니는 울타리에 줄을 묶고 줄에 맥주캔과 음료수 캔을 매달아 놓으셨다. 줄의 다른 한쪽은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발코니 난간에 묶어놓으셨다. 새란 놈들이 날아들면 줄을 흔들어 깡통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서 새들을 쫓아내는 아주 과학적인 구조이다.
재미 삼아 줄을 흔들어 깡통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니 경쾌하면서도 재미있다. "역시 우리 엄마 천재시네!" 라면 너스레를 떠니 너희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하셨다며 웃으신다.
마당 크기가 어림짐작으로 열 평 정도는 될법한데, 이제 곧 있으면 어머니는 보리를 베고 말려서 탈곡을 하실 게다. 생각만 해도 허리굽은 할머니 울 엄마의 바지런한 손길이 눈에 선하다.
처음 집 떠나 대학 다니던 시절 어쭙잖은 마음으로 풍물패 서클(동아리)에서 활동할 때, 필자가 막걸리 한잔 먹고 장구 꽹과리 장단에 맞춰 자주 부르던 정태춘 아저씨의 '고향집 가세'가 생각나는 2023년의 초여름이다. 엄마 아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내 고향집 뒤뜰에 해바라기 울타리에 기대어 자고
담너머 논둑길로 황소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음 무너진 장독대 틈사이로 난쟁이 채송화 피우려
푸석한 스레트 지붕위로 햇살이 비춰오겠지
에헤에야 아침이 올게야
에헤에야 내 고향집 가세
내 고향집 담그늘에 호랭이꽃 기세등등하게 피어나고
따가운 햇살에 개흙마당 먼지만 폴폴 나고툇마루아래 개도 잠이 들고 뚝딱거리는 괘종시계만
천천히 천천히 돌아갈게야 텅빈집도 아득하게
에헤에야 가물어도 좋아라
에헤에야 내 고향집 가세
흙담에 매달린 햇말볏적 어느 자식을 주려고
음 실한 놈들은 다 싸보내고 무지랭이만 겨우 남아도
쓰러지는 울타리 대롱대롱 매달린 저 수세미나 잘익으면
에헤에야 어머니 계신 곳
에헤에야 내 고향집 가세
마루끝 문 앞에 무궁화 지는 햇살에 더욱 소담하고
원추리 꽃밭에 실잠자리 저녁 바람에 날개 하늘거리고
음 텃밭에 꼬부라진 오이가지 밭고랑 일어서는 어머니
지금 퀴퀴한 헛간에 호미 던지고 어머니는 손을 씻으실게야
에헤에야 수제비도 좋아라
에헤에야 내 고향집가세
내 고향집 마당에 쑥불피우고 내 방석에 이웃들이 앉아
도시로 떠난 사람들 얘기하며 하늘의 별들을 볼게야
음 처자들 새하얀 손톱마다 새빨간 봉숭아 물을 들이고
새마을 모자로 모기 쫓으며 꼬박꼬박 졸기도 할게야
에헤에야 그 별빛도 그리워
에헤에야 내 고향집 가세
에헤에야 어머니 계신 곳
에헤에야 내 고향집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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