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가을날이 어둑어둑해질 때 찌뿌둥한 몸을 추스르려 산책을 나가려다가, 현관 앞에 놓여있는 아들놈 인라인 스케이트가 보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필자도 인라인 스케이트를 한번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 신발장을 뒤져보니 필자가 몇 년 전에 타던 인라인 스케이트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필자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장소는 필자가 산책을 하면서 발견한 집 근처에 몇 달 전에 새로 설치된 저류지였다. 저류지는 평상시에는 인라인 스케이트 장으로 쓰이다가 장마나 태풍이 와서 강수량이 많아지면 임시로 저수지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이번 장마 폭우 때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을 보았다.
인라인 스케이트장에 도착하니 초등학교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이 두 반으로 나뉘어서 인라인 강습을 받고 있다. 어린아이들이니 아이들 엄마 아빠들도 따라 나와 30여 명 정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단체로 강습을 받는 자리를 피해 스케이트장 한 귀퉁이에서 몸을 풀고 인라인을 탔다. 오랜만이라 조금 자세가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뒷짐진 자세로 허리를 깊이 숙이고 머리를 치켜든 자세로 열 바퀴 정도 돌고 나서 벤치에 앉아 쉬면서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강사 뒤를 줄지어 따라가는 귀여운 모습을 구경했다. 젊은 엄마 아빠들은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줄지어 가는 동안 자기들 아이를 찾아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필자의 아이들이 자전거, 축구, 인라인, 수영 이런 운동들을 배울 때 저 젊은 아빠들처럼 사진을 찍고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오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제부터 인라인 계속 즐겨 타서, 아주 한참 뒤에 손주 놈들이 인라인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는 필자가 흰머리 휘날리며 빠꾸로 멋지게 인라인 타면서 손주 놈들 인라인 가르쳐줘야겠다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