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새벽부터 수도권에 눈이 7cm 이상 내릴 거라고 호들갑이다. 겨울이면 눈이 내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를 나서니 정말로 눈이 많이 내렸다. 눈 내린 아침 풍경은 오십 년을 넘게 봐왔어도 아름답고 특히 해뜨기 전의 눈 내린 모습은 조금은 엄숙하기도 하다.
눈 내리기 전의 세상 모든 허물들을 순백으로 뒤덮어놓니 왠지 상처가 치유되고 힐링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감상에 젖어 담배 연기 한 모금 길게 뿜어내고 담배꽁초를 편한 마음으로 던져버리고 구둣발을 휘둘러 눈으로 살짝 덮어버린다.
이런 작은 공중도덕의 일탈이 내린 눈으로 인해 죄책감을 무디게 만들어준다. 다시 눈이 녹으면 필자의 작은 악행들이 다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나와 도로를 바라보니 부지런한 사람들의 차량행렬로 도로 위 하얀 눈들은 이미 반쯤 녹아서 검은색으로 변해있다.
순백의 눈도 버스가 몇 번 지나가면 시꺼멓고 보기 싫은 슬러지로 변해버리는 얄궂은 세상이치다. 버스,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사무실 근처 남산을 바라보니 눈발에 남산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늘 존재하는 것이 눈이 내리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아마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눈 내린 출근길에 눈 때문에 생기는 사람의 심리변화와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오감변화, 세상 풍경의 변화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인생을 반추해 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5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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