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를 뜯는 방법도 모르는 놈이.
지난주 시골집에 들러서 부모님을 뵙고 왔다.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팔순 노모는 분주해지신다. 들기름은 안 떨어졌니? 마늘은, 상추는 쑥갓은, 감자는 등등 서울에는 마트가 없어서 굶는 것으로 아시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됐다고 손사래 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엄마가 주시는 것은 무조건 감사하다며 챙겨 오는 게 효도인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뭘 주신다고 하면 '예 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설레발을 치며 주시는 대로 받아 차에 싣게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챙기다가 어머니가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주신다며 서두르시는 모습을 보고 '상추 정도는 제가 뜯어갈게요'라고 말씀을 드리고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으로 가는 길에 낫이 눈에 띄어 낫으로 상추를 베어 오면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낫을 들고 텃밭에 이르러 가장 잘 자란 놈들로 슥슥 베고 나니 상추 뜯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뿔싸! 쉰 넘은 아들놈이 여전히 못 미더운 어머니가 뒤따라오셔서 상추를 버려놨다고 크게 타박을 하신다. 상추가 하도 많아서 밭에서 버리게 됐다며 많이 뜯어가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낫으로 상추를 밑동부터 싹둑 잘랐다고 역정을 내신다.
이에 질세라, 아들은 너무 많아서 버리게 생겼다며, 다 뜯어 가라실 때는 언제고 그러시냐고 항변을 하지만 얼굴에는 정이 듬뿍 담기 역정을 내시는 엄마얼굴이 재미있어, 한마디 더 한다. "엄마 뭐 전쟁이라두 터졌어? 아들이 일머리가 없어 그러는 걸 그렇게 역정을 내십니까?" 그래도 엄마가 가르칠 일이 있으니 좋은 거 아니유?"
이런 넉살에 엄마도 웃으시며 "그래 뭐 전쟁 난 것도 아니지, 그깟 거 며칠 지나면 또 자라는데 그렇지" 이렇게 엄마와 아들은 작은 언성으로 정이 더욱 깊어간다. 그래, 어설픈 상추 뜯는 실력을 가진 아직은 여전히 엄마 앞에서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대한민국 50대 남자는 울 엄마 노년의 삶에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된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못 미더운 아들놈 아직도 오래오래 엄마 잔소리 많이 필요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