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본인의 의지는 박탈된 채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바람을 담아서 짓는 것이 보통이다. 또는 유명한 작명가에게 의뢰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집안의 항렬에 따라서 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이 세 글자 중 한 글자만을 선택해야 하고 중복되는 이름도 피해야 했으니 어찌 보면 웃기기까지 하다. 어디 그뿐인가 욕에 가까운 이름 정성이나 성의는 찾아보기 힘든 말자, 팔년이, 끝순이, 나열하기조차 너무 많은 이름들이 있다.
평소 알고지내던 언니는 오래전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너무 예쁘고 신기한데 이름 짓기를 몇 날 며칠 끝에 심사숙고해서 지은 이름이 처음 열매란 뜻으로 '초실'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옛날 기생 이름 같다고 다시 짓게 되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이름도 유행이 있어서 딸아이 이름을 초실이네처럼 정성껏 짓고 불러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보니 성만 다른 이름이 세명이나 되었단다. 산후조리원을 운영했던 필자의 경험상, 요즘도 여전히 신생아의 이름들을 보면 앞서 언급한 지의의 딸아이 같은 상황이 그려지기도 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산모들이 함께 네 명이 수유실에서 수유를 하면서 질문을 한다. 원장님 우리 아기 이름을 뭘로 지으면 좋을까요? 하는 거였다. 난 작명가도 아니고 왜 뜬금없이 내게 묻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뭐든 질문에 잘 답변을 해주어서 묻는 거란다. 내 얘기가 다 옳지는 않지만 내 생각은 오십 넘어서니 건강이 바탕에 있다 치고 지혜와 용기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삶에서 중요하고 좋은 뜻도 무수히 많지만 큰 고난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지혜와 기회를 기회로 만들 만큼의 용기는 꼭 필요하단 필자의 생각을 얘기하는 순간 산모 네 명은 "와 그럼 지용이네 너무 좋은데요" 하며 다 함께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후로 칠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물었던 산모가 아기 이름을 지용이라 지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요즘이야 개명도 많이 하고 국적을 점치기 힘든 이름도 있고 실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사는 시대가 되고 보니, 이름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