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2월 8일부터 1905년 9월 5일까지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인 러일전쟁은 동아시아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펼쳐진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19세기말 동아시아의 정세와 러시아와 일본의 내정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인
19세기 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병합하여 아프가니스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제국은 서쪽의 폴란드에서 동쪽의 캄차카반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영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함으로써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출구를 확보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추진하며 국력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편입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러시아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은 러시아의 극동함대가 정박 중이던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과정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제1차 한일 협약을 통해 재정과 외교 분야에 고문을 두는 등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해하였습니다.
1904년 8월 10일, 황해 해전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1905년 5월 27일, 일본은 동해 해전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상대로 또다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는 대부분의 전력을 상실하였고, 사령관인 로제스트벤스키 제독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1905년 5월 28일 - 5월 29일, 일본은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완전히 괴멸시켰습니다. 이 전투는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결과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패배로 인해 국내적으로 큰 혼란과 불만이 일어났으며,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는 일본에게 사할린 남부와 동해의 일부 섬을 할양하고, 뤼순과 다롄의 조차권을 포기하였으며,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우월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영향
러일전쟁은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에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병합하였습니다.
러일전쟁은 20세기 초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국주의 세력으로 군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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