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고갯마루에 다다르기까지 한날도 한가한 날은 없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물으면, 그 나이가 되면 안 아픈 날이 없고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신다. 보통보다 작은 울 엄마 몸이 작으니 손도 작고 발도 작고 어딘가 걸어서 갈 일이 생기면 키 큰 이의 두 배를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에 아마도 부지런함은 그녀에겐 숙명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그래도 마음은 늘 넓고 또 넓었다.
그런데 남편은 타인에겐 한없이 인자하시고 너그럽건만, 그 작고 더없이 착하고 부지런한 부인에겐 자상하거나 따뜻하게 하는 법을 모르기도 하지만 어쩌다 하시는 칭찬이 어색하기만 하다 아마도 남편도 그러한 모습을 배우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리 만큼의 유교맨과 육십여 년을 살아왔으니 남편과의 대화보다는 논밭에서 일을 하며 땅에게 얘기를 더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빨리도 간다. 친정을 동생과 함께 다녀온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흘도 더 지났나 보다 동네 마트에서 전단지가 왔기에 쭉 보다가 김장을 위한 절임배추 주문을 받는다는 내용을 보고 깜빡하기 전에 주문하기로 했다. 뉴스에서는 닐마다 물가가 오른다는 내용이 빠지질 않는다. 정말 모든 물가가 올랐다. 기본적이 라면이나 과자 빵 등등 특히 배추가 한 포기에 만 이천 원까지 오르더니 요즘은 좀 내려가긴 했지만 팔천 원이나 하는 배추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값이다. 다행히 주문하는 배추는 작년보다는 올랐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싸서 다행이다 싶다. 결혼을 하고는 동생들과 모두 모여서 김장을 하고 필요한 만큼씩 가지고 갔지만 난 시댁 입맛에 맞도록 담그라며 배추와 고춧가루를 비롯한 모든 재료들을 실어 와서 집에서 따로 하곤 했었다. 절임배추를 주문하고선 시간 날 때 김치냉장고 정리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김치 통에 담아둔 파 뭉치에서 엄마의 얼굴이 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싸주신 대파는 이름은 대파인데 농약 없이 키우기는 했지만 작고도 늙으신 엄마의 손길에 자란 대파는 시장에서 파는 굵직하고 쭉쭉 뻗은 모양과는 사뭇 다르다. 엄마의 대파는 쪽파처럼 가늘고 길다 그리고 엄마가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싸인 채 그대로 싱싱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 옆엔 친정집 울타리 밑에서 고이 자란 고들빼기와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쩜 배고파도 참고 있었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울 엄마의 작은 손으로 밭을 일구고 작은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풀에 치어 크지 않을까 때맞춰서 풀을 뽑고 가뭄에 물주고 무섭던 장맛비 이겨내고 울 엄마 작은 손에 곱게 싸인 가늘고 긴 쪽파 같은 울 엄마의 대파. 오늘은 대파와 함께 가져온 막장을 넣고 대파와 약 오른 매운 고추를 넣고 엄마의 장을 보글보글 끓여 주시던 흉내 내어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작지만 마음만큼은 젤 큰 울 엄마!!! 지금 엄마도 내가 흉내 내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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