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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대 남자, 인생시 감상, 김철수 어르신의 '청심대' 감상하기

by 대한민국 50대 남자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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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대(淸心臺)

- 김철수 지음

강릉부사와 관기의 사랑이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죄값 치르느라
맑고 굳은 절개 증명해 보이느라

힘겹게 올라온 이 절벽 위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진 몸뚱이를
아낌없이 내던져버렸다는 청심(淸心)이.

풍덩! 그 사랑 한강의 시원지 우통수로 흘러 흘러
님 계신 한양으로 흐르고 흘러 흘러
수백 년이 지난 오늘도 흐르고 또 흘러 흘러

한강물은 사랑이라고, 사랑은 청심(淸心)이라고
사랑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거라고
사랑에 메마른 가슴에 물줄기를 대어준다.

- 시집 '어디쯤 오니'(도서출판 소야)
32페이지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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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1948년 강릉 삼척에서 태어남.
다섯 살 때 영월로 이사와 자라남.
1976년 직업훈련원에 입사하여
2009년까지 근무하면서
기숙사 사감으로 학생들을 지도함.
뇌출혈로 오른쪽 마비와 언어장애를
겪었으나 독실한 신앙심과 재활훈련으로 극복함.
2018년도 진부로 내려와 벌을 키우면서 생활하고 있음.


대한민국 50대 남자의 시를 읽는 느낌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물에 뛰어들어 돌아가신 여성분들이 꽤 있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의자왕의 삼천궁녀' '효녀 심청이' '논개'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필자의 기억으로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료로 남아있는 분은 논개뿐이었는데 '청심대'라는 시를 감상하다가 '청심대'에 얽힌 '청심'이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청심대에 얽힌 이야기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옛이야기를 찾을 수 있어 여기에 옮겨 적어 본다. "평창 청심대 (平昌淸心臺), 원도 평창군 진부면 마평리(馬坪里)에 있는 1928년에 지어진 정자. 조선 고종 3년 강릉부사로 박대감이라는 사람이 중앙부서로 상경하게 되자 부사의 총애를 받던 명기 청심이가 이곳까지 동행하던 중 강변 절벽 위의 경치를 보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에 청심은 굳은 절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청심의 뜻을 가상히 여겨 1928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청심의 이름을 따서 청심대라 불렀다. 최근 대대적인 보수와 더불어 청심의 위패를 모신 사당도 지어 청심의 넋을 기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평창 청심대 [平昌淸心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위에 인용된 사실로 본다면 관기 '청심'은 한양에서 순환근무로 내려온 강릉부사의 애첩이었던 것 같다. 관기라는 신분으로 수시로 바뀌는 강릉 부사를 사랑해서는 안 되고, 영감님들을 모시는 데는 직업으로서 대해야했을 운명인것을. 어찌하여 박대감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한양으로 발령 나서 돌아가는 박대감을 강릉에서 보내드리면 될 것을, 왜 대관령 너머 머나먼 평창 진부까지 전송한다고 따라와서 몸을 던졌을까? 참으로 기구하다. 청심이가 몸을 던진 강이름을 찾아보니 '아람치골천'이다. 강이름이 참 낯설다. 아람치골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 아람치골천이 어디로 흐르나 지도를 살펴보니 정선으로 흘러서 영월에 이르러 남한강으로 흘러가니 한양으로 흘러가는 물길은 맞는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한양에 박대감도 없을 터인데, 아직도 평창 청심대에 위패 모셔져서, 그곳을 마음대로 떠나지도 못하는 청심이는 이제 어찌하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 50대 남자, 평창 농업기술센터에서 얻어온 시집 '어디쯤 오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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