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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0대 가장, 딸아이와 문상 다녀오며

by 대한민국 50대 남자 2022.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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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몇 해 전 시집간 조카딸 시모상 부고를 받았다. 필자 눈에는 아직 어린애 같은 조카딸이 지난해 시부상을 당하고 몇 달 건너 또 시모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로 직접 문상을 다녀오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로 문상을 다녀올 수 있었다.

 

조문용 흰 국화가 엄숙하다.
Pixabay 콘텐츠 라이선스에 따른 무료 사용 / 국화

 

목소리가 떨린다

이번 문상길에는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빈소로 들어가는 길에 성인이 되어 문상이 처음인 딸아이에게 아빠 따라서 두 번 절하면 된다고, 핸드폰은 진동이나 무음으로 전환해 놓으라고 당부를 했다. 빈소에 들어서니 60세를 갓 넘기신 사돈어른의 고운 자태가 영정사진에 담겨있다.

 

 

슬픔에 잠긴 조카딸과 조카사위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어른이 의젓해야 하는데 오히려 담담한 조카딸 부부, 위로의 말을 전하는 필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림을 스스로 느끼고 눈가가 젖는 느낌에 고개를 살짝 돌린다. 문상을 하고 자리를 잡으니 재빠른 장례식장 도우미분들이 음식을 내온다. 젊디 젊은 조카딸 부부와 마주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위로랍시고 하는 필자의 말들이 두서가 없다. 그냥 안타까운 마음이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에 마음만 담아본다.

 

 

장례식장 문상이 편해지는 시기

어른이 된다는 것 중에 필자가 하나의 지표로 삼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어른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이래저래 문상 갈 일들이 늘어난다. 필자도 꽤나 열심히 문상을 다녔는데, 서른 중반을 넘길 때까지는 장례식장의 분위기와 음식이 조금 불편했었다.

 

 

그러다 마흔 언저리쯤 되면서부터 장례식장에 문상 가서 먹는 음식이 꺼려지지 않았다. 조문할 때에 상주에게 위로를 건네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음식과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같이 온 동료나 친구들과 왁자지껄 사뭇 술집에서 술 먹는 분위기를 연출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 문상을 따라온 딸아이에게 이런 아빠의 경험도 얘기하고, 그 아이에게는 먼 이야기인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리고 또 언제 닥칠 부지불식간의 우리 부부의 건강 이상이나,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걱정과 근심을 함께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놈도 장례식장에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녀의 역할 구분 이런 것이 무색한 21세기에도 장례문화에 관한 한 아직 남녀의 역할의 차이가 아직은 존재하니, 그 아이에게도 조문이라는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 인생의 경건함 이런 것을 조금은 일찍 알려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 엄숙한 문상길에 군말 없이 따라와 준 딸아이 정말 기특하다. 아마도 내일이면, 이 아이의 내면도 조금은 성장해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보듬는 마음, 이런 것들이 얼마나 한 인간을 사람이 되게 하는 자양분임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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